나름 둘레길을 찾아다니고 글도 써보고, 익혀왔던 분위기, 그리고 자문위원 활동을 하면서 체험하고 배웠던 사실들이 많다. 좀더 나은 둘레길이 만들어지길 바라면서 민원도 넣어보고 했지만, 결국 안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내가 느꼈던 우리나라 둘레길에 대한 현실을 글로 쓰려고 한다.
제주올레길의 인기에 힘입어 전국에 둘레길 조성 광풍이 불었다. 게다가 녹색경제를 내세우며 중앙정부의 각 부처가 앞다퉈 둘레길을 만들겠다고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었다. 이러다보니 제대로 코스를 답사하고 기본적인 편의시설조차 없이 둘레길 개설을 위해 데크길과 전망대가 세워진 형국이 되었다.
더욱이 등산과 달리 둘레길은 산허리를 둘러가는 코스이다 보니 접근성이 용이할것이라는 시민들의 생각이 지배적인데 반해, 실제 조성한 둘레길은 산 정상을 질러가거나 기존의 등산로 코스를 둘레길로 표시판만 바꾸기도 하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둘레길에 대한 정의와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전문가 의견없이 조경 공사하듯 둘레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각 지자체에서 조성한 둘레길 중에 제대로 조성한 곳과 잘못된 곳을 짚어보려고 한다.
먼저, 둘레길(영어로 Trail)은 길게 오랫동안 걸을 수 있는 숲이나 산에서 조성한 길로 연결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조성한 대부분의 둘레길은 진정한 의미의 둘레길이 아닌 산책길 정도밖에 안되는 짧은 길을 모아 놓고 둘레길이라고 칭하고 있다.
실제로 주요 둘레길의 상황을 살펴보자.
지난 2012년 말 군포에 수리산주변으로 ‘수릿길‘이라고 조성되었다. 기존 임도길과 등산로뿐만아니라 주변 도심 공원길까지 총 13개 코스로 구성되었지만 기존 임도길코스와 등산로 코스를 제외하면 5~7km 내외로 짧고, 전체를 연결하여 걸을 수 있는 상황이 안된다. 그냥 단절된 산책길이 띄어띄엄 있는 구조이다.
이외에도 대청호반길도 단절된 코스가 많고, 오산둘레길, 서울생태문화길, 도봉역사길, 고양시누리길 등등 도 마찬가지로 짧은 여러 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대체로 낮은 산과 공원을 이어서 좋은 환경을 제공한 것은 좋지만 오래 걷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인위적으로 길을 개설하고 방부목으로 데크길을 조성하여 예산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의 둘레길을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용한 예산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는 둘레길이 탄생된 것이다.
차라리 파주 심학산둘레길, 괴산 산막이옛길 처럼 군더더기 없고 알차게 조성하여 한 두 개 코스만 이어서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이곳은 명소가 되었고끊임없이 길꾼들이 찾아오고 있다.
위의 둘레길과 반대로 서울둘레길, 동작충효길, 부천둘레길, 대전둘레길, 북한산둘레길, 외씨버선길 등은 지자체에서 조성하였다고는 하지만 일관성을 가지고 장거리 트레킹이 가능한 곳이다. 물론 100km 안쪽이라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유명한 외국의 트레일에 비하면 짧지만 잘 만들어지고 꾸준한 인기를 가지고 있는 둘레길이다.

지자체가 아닌 민간단체에서 조성하였거나 관리운영하는 둘레길은 훨씬 괜찮은 곳이 많다 . 둘레길 전체코스도 100km 이상되며, 쉼터와 숙박지 정보, 교통편 등 정보체계도 잘 구성되어 있고 걷고싶게 만든 코스를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져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더우기 각 관리단체가 애착을 가지고 운영하다보니 다양한 이벤트 및 걷기행사가 정기적으로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이 있고, 이외에 강화나들길, 군산구불길, 소백산자락길, 강릉 바우길 등이 이에 해당 된다.


둘레길을 조성하던 초창기에는 전문적인 길꾼들이 없다보니 등산 전문가를 통해 길을 찾고 만들었었다. 이러다보니 둘레길이 아닌 둘레산길이 되어버려 외면받은 둘레길도 많다. 서울둘레길 초창기에 계획한 코스를 보면, 수락산, 대모산, 구룡산 등 능선을 타고 넘어야 했다. 지금은 산 허리를 휘감아 도는 코스로 변경되어 있는데 이또한 산악인을 제외하고 나서 바뀐 사항들이다. 이러한 현실은 등산과 둘레길을 걷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해 못하고 만든 결과물 이다.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지방의 둘레길이 있다. 그런대도 길꾼이 찾아가지 않는 이유는 길꾼들이 좋아하는 숲길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지자체에서 보여주고 싶은 유적지나 지방 유지의 특별한 곳(?) - 펜션이나 박물관 등 사업지를 경유하는 경우 - 을 방문하도록 억지스럽게 둘레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바뀌어야할 시점이 되었다. 둘레길을 계속 조성하기 보다 관리하고 길꾼이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인프라 시설을 구축해야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매년 수십만 명이 찾아와도 무리없는 이유는 알베르게와 쉼터, 이야기거리, 마트 등 편의시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둘레길 중에 오랫동안 걸을 수 있도록 주변시설이 잘 갖춰진 곳은 제주올레길 뿐이다.


걷기여행은 등산과 달리, 하루 이틀을 위한 여행이 아니다. 시간에 제한이 없이 다닐 수 있는 여행이 둘레길따라 걷는 여행이다. 이제는 길 조성하기 보다 관리하고, 타 지역의 둘레길과 연결하여 길 위에서 오랫동안 걸을 수 있도록 연계하는게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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