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 12
명분과 실리의 균형
매월 둘째주는 카네기클럽의 길여행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번에 찾아갈 장소는 성남의 남한산성둘레길이다. 남한산성 둘레길은 예전에 자주 갔었던 길이기도 하다. 밤에도, 가을에 단풍질때, 봄에 꽃이 필때... 언제 가더라도 운치있는 산위에서 내려다보는, 산성을 따라 걷는 길은 매력적이다. 이번 일정은 내가 정한 코스는 아니지만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어떤것을 해줘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남한산성의 역사적인 상황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얼마전 영화로도 나왔지만 난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 내면에서 솟구쳐오르는 왠지모른 분노에 짜증이 날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의 수난기
조선시대의 임금이 거주하는 주요도성이 한양순성(한양도성)이었다면 유사시 피난을 통해 방어기지이자 기거하던 곳이 남한산성으로 이성체계에 해당하는 곳이다.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청나라가 건국되고 명나라와 대치상황에 있을 때 조선은 커다라 고래 사이에 끼인 작은 새우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상황이 중요한 시기였다. 광해군은 명과 청 어디에도 동맹을 맺기보다 거리를 두고 중립적인 관계를 취하는 실리적인 정치노선을 택하고 있었으나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와 이를 도왔던 서인과 남인세력의 붕당정치가 본격화 되기도 했다. 게다가 대국인 명나라와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명분을 내세워 친명배금정책을 내세워 금으로부터 침략의 명분을 내줘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게되어 임진왜란의 후유증을 다 정리하기도 전에 또 다른 전쟁으로 쇄약해지는 상황을 맞이했다. 40여일간 남한산성에서 버티던 인조와 사대부들은 한강의 삼전나루에서 항복선언을 하고 만다.
남한산성은 이러한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곳이며, 산성의 모습은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경기도에서 관리하다 관리의 주체가 경기문화재단으로 넘어가면서 관리가 부실하여 성곽이 부서지거나 엉망으로 관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로 관리주체가 재단에서 다시 지방정부로 넘어왔다. 그러면서 제대로된 보존과 관리가 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삼전나루에서 청나라에 항복하면서 이에대한 사실을 비석으로 세우게 되어 삼전도비가 생겨났다. 청나라가 멸망한 후 고종때 삼전도비는 굴욕의 모습을 지우자는 명분으로 강속에 비석을 쓰러뜨려 버렸다. 이후 일제강점기때 다시 발굴되어 세워졌다가 독립 후 다시 한 번 비석을 쓰러뜨리는데 이후 한강홍수로 인해 다시 뭍위로 올라오면서 옛 굴욕의 역사를 상기하고 역사 보존이라는 이유로 삼전도비가 지금에 위치에 서게 되었다. 명분으로 없애려했던 것은 결국 명분이 없어지면 다시 고개를 들어 사실을 확인하게끔 나타났다. 사실의 여부는 없앨 수 없는 인과응보의 결과물이다.
산성의 둘레길
남한산성의 둘레길은 성 안쪽과 바깥쪽을 따라 어느면에서나 둘레를 걸을 수 있다. 성 바깥에서 걸으면 청량산 아래로 서울시내의 풍경이 가득 내려다 보인다. 성안에서 다니면 한적하고 포근하게 감싸는 성곽으로 인해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산성이다보니 오르막과 내리막이 제법 많고 힘든 구간도 있다. 이러한 곳에 성곽을 만든 것도 대단하지만 편하게 올라 올 수 있는 도로가 산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것도 대단하다.
이곳은 가을 단풍이 가득할 때 찾아오는 것이 가장 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울긋불긋한 단풍과 어우러진 산성의 모습이 가히 아름답다 말 할 수 있고, 전체를 돌면 8km 정도 되나 짧게 성문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걸을 수 있기도 하다. 보다 자연과 산을 경험하고 싶다면 주변 검단사과 등과 연계하여 트레킹을 즐길 수 있고, 산 아래 길을 따라 성내천을 따라 몽촌토성까지 이어지는 토성산성어울길을 걸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명분이 우선일까? 실리가 우선인가?
길은 많은 이야기를 품는다. 그냥 걸을 수 있게끔 만들어진 길이라도 여길 다니는 사람들에 의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쌓이고 하면서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이 자연스레 생긴다. 지자체에서 만든 길은 인위적으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길에다가 입힌다. 그래서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진다. 그래서 길을 걸으면서 단순히 걷기에만 치중하기보다 왜 길이름이 이러한지? 여기에는 어떠한 이야기기 있을지 생각하고 질문을 던져본다면 보다 재미있는 꺼리들을 만날 수 있다.
남한산성은 수난이자 굴욕의 역사의 현장이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명분이냐? 실리이냐?라는 선택에서 명분을 선택한 인조와 그의 비호세력들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그렇지만 역사책에는 인조만이 부곽될뿐 그 아래에서 명분의 분위기를 만들고 말로만 먹고살려던 사대부 세력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만약, 광해군의 실리적인 정치노선을 계속 이어갔다면 삼전도의 굴욕과 병자호란, 그리고 환양녀라는 말이 생겨났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어느순간에나 명분과 실리라는 두 개의 조건에 고민하고 선택해야만 한다. 너무 명분만 쫓다보면 겉으로는 화려애 보이지만 속으로는 이득이 없는 속 빈 강정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명분없이 실리만 챙기는 행동은 주변으로 부터 질타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청이 전쟁을 일으킨것은 조선이 명확한 명분을 줬기 때문이다. 만약 명분없이 조선을 침략했다면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하다보면 명분이 있어야만 공감과 타당성을 겸비하여 목적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어느쪽으로 치우치면 좋은 결과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삼전도굴욕'을 안겨준건 사대부들의 명분이었으나 이를 감내한것은 약한 왕권을 가진 인조였다.
남산한성둘레길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명분과 실리의 균형이었다.